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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가 뜯어먹어서 잎에 구멍이 숭숭 났다.
내 첫 텃밭 이야기다. 건강에 좋다는 브로콜리와 양배추, 케일을 내가 직접 재배해서 먹겠다는 야심 찬 포부를 가지고 시작했는데, 불과 한 달 만에 벌레한테 밭을 완전히 내주고 말았다.
보통 건강을 생각해서 텃밭을 시작하는데 처음 시작해서 첫 번째로 심었던 게 이세 가지다. 왠지 건강해질 것 같고 식탁을 풍성하게 해 줄 건강한 밥상을 상상하면서 시장에서 모종을 사 와 텃밭 한쪽에 뿌듯한 마음으로 심었었다.
1. 텃밭 초보, 심고 싶은 것만 골라 담았다
내가 텃밭 농사를 시작할 때만 해도 이렇게 벌레가 꼬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워낙 농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이다 보니, 그저 시장 모종가게에 가서 모종을 고르는데 내가 심고 싶은 작물만 눈에 들어왔다. 몸에 좋다는 브로콜리, 양배추, 케일 모종을 골라 담으면서 ‘이걸 잘 키워서 수확한 다음 매일 신선하게 녹즙도 짜 먹고 양배추 찜과 샐러드도 해 먹어야지’ 하는 이미 건강해진 것 같은 기분 좋은 생각만 가득했다.
주변에 물어보지도 않고 그냥 혼자 덜컥 덤빈 거였다. 시장에서 사 온 싱싱한 모종을 밭에 심을 때만 해도 곧 밥상에 올릴 수 있을 것 같아 뿌듯하기만 했다. 텃밭에 모종을 심었을 때는 건강하게 잘 자라 주었다, 벌레가 꼬인다는 기본적인 사실조차 염두에 두지 않은 채, 해충방제에 대한 기본지식도 전혀 없는 오직 수확해서 맛있게 먹을 생각만 했던 내 지독한 무지함이 불러온 첫 단추였다.
2. 케일 한 달, 6월부터 벌레한테 내줬다
4월에 모종을 심고 나서 한동안은 케일이 잘자라고 있는 걸 보면서 기분이 정말 좋았다. 모종 심을 때 와 심고 나서 물을 줬을 뿐 크게 손댈 필요 없이 케일은 쑥쑥 잘도 자라고 있었다. 속도가 빨라서 5월 중순까지 한 달 동안은 어리고 야들야들한 잎을 따다가 케일쌈으로 먹고 데쳐서 케일 쌈밥도 해 먹고 당근과 사과를 넣은 야채즙도 갈아먹고 아주 잘 먹었다. 내가 직접 키운 채소를 따서 먹는 맛에 재미도 있었고 신선하고 친환경 먹거리라 생각하니 어깨가 으쓱해졌다. ‘농사 별거 없네’ 하고 자신감까지 생겼었다.
하지만 진짜 시련은 6월부터 시작됐다. 날씨가 조금씩 더워지기 시작하더니, 어디서 나타났는지 눈으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벌레와 진딧물이 꼬이기 시작했다. 5월 중순까지만 해도 깨끗하던 케일 잎이 불과 며칠 사이에 벌레들이 다 뜯어먹어서 구멍이 숭숭 나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구멍 정도가 아니라 아예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구멍 뚫린 누더기처럼 변해버렸다. 처참하게 벌레에게 점령당한 케일을 결국 6월부터는 수확은커녕 밭 근처에 가기도 무서워서 케일 전체를 무자비하게 덤벼드는 벌레한테 통째로 내주고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3. 브로콜리·양배추, 키웠는데 못 먹었다
케일도 케일이지만, 브로콜리와 양배추는 상태가 더 심각했다. 케일은 5월에 몇 번 따먹기라도 했지, 브로콜리랑 양배추는 자라는 기간이 2달정도 성장할 때까지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냥 놔두면 땅에 영양분을 먹고 잘 자라겠지 했다. 어느 날 구멍이 숭숭 나있어서 자세히 들여다보니 벌레가 이미 브로콜리와 양배추를 점령하고 있었다. 벌레를 토방 할 방법을 나름 찾아봤지만 막지는 못 했다. 분명히 땅에서 쑥쑥 잘 자라고 있었는데 잎이고 알맹이고 간에 벌레와 진딧물이 바글바글해서 도저히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포기하기 전에 나름대로 뭔가를 해보긴 했다. 약을 치면 벌레야 금방 잡았겠지만, 우리 가족들 입에 들어갈 먹거리인데 차마 화학 농약을 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찾아보고 농약 대신 계핏가루를 구해서 작물 주변과 박물에도 듬뿍 뿌려보았다. 그런데 계핏가루 정도로는 엄청나게 몰려드는 벌레들을 막기엔 턱없이 부족했고,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농사는 열심히 심고 물만 주면 다되는 줄 알았었는데 절대 쉬운 게 아니었다.
농약 없이 해충을 피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 있다면 꼭 다시 한번 심어보고 싶지만, 지금으로서는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이번에 벌레 떼를 직접 경험하고 나니 또 다시 덤빌 용기가 도저히 나지 않는다. 그래서 올해는 벌레가 안 꼬이는 다른 작물을 알아보거나, 친환경 방제법을 완벽하게 공부하기 전까지는 십자화과 채소 심는 것을 당분간 미루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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