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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준비는 봄부터 시작돼요.
사람들은 김장준비를 늦가을이나 초겨울에 준비한다고 생각하지만, 진짜 밭농사 짓는 사람들에게 김장은 봄부터 시작되는 긴 여정이다. 마늘 심는 것까지 하면 사실상 그보다 더 훨씬 빠르지만 봄에 고추 모종을 가져다 심어서 고춧가루를 만들어야 하고, 고추장도 담가야 한다. 봄에 마늘 캐고 대파 심고, 늦여름 되면 참깨 털어낸 자리에 무 씨앗 뿌리고 배추 모종을 심는다. 거기에 쪽파까지 온갖 갖가지 양념 재료들을 1년 내내 때에 맞춰 심어야 김장 한 판이 완성된다. 안 해본 사람들은 이 과정을 잘 모르겠지만, 결국 봄에 힘들게 고추를 심는 이유도 겨울에 김장 담는 일을 잘 치르고 맛있는 고추장을 만들어 먹기 위해서다.
1. 김장 준비, 봄부터 시작되는 1년의 농사
매년 8월 중순에서 하순 사이에 접어들면 농부들은 마음이 바빠진다. 올겨울 김장할 배추나 무 쪽파 같은 김장 재료들을 본격적으로 심을 준비를 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8월에 배추 모종 몇 포기 사다 심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사실 그 전단계부터 손이 정말 많이 간다.
작년 겨울에 심어놓은 마늘과 양파를 수확해서 바람이 잘 통하고 습하지 않은 곳에 썩지 않도록 잘 보관하고 봄에미리 심어둔 대파를 잘 가꾸고, 여름내 날 뜨거울 때 고추밭 들여다보며 고추 따서 말리는 것부터 시장 방앗간에 가서 고춧가루를 만들기까지 모두 다 김장의 일부다. 김치 한 포기 담그는 데 들어가는 양념 작물들을 하나하나 내 손으로 키워내는 셈이라, 8월에 배추 밭을 일굴 때쯤 되면 이미 한 해 농사의 절반 이상을 달려온 기분이 든다. 이 모든 과정이 갖춰져야 비로소 제대로 된 김장 배추를 심을 수 있는 터전이 만들어진다.
2. 참깨 수확 자리, 바로 배추 고랑으로 만들기
8월이 되면 중부지방에선 약속이라도 한듯 모든 농가에서는 한창 참깨를 베어내는데, 참깨를 수확하고 남은 그 자리가 바로 배추와 무가 들어갈 명당이다. 참깨를 베어낸 자리에 그대로 배추를 심을 수는 없으니, 남아있는 참깨 뿌리를 일일이 다 뽑아내고 배추 모종과 무 씨앗 심을 자리를 깔끔하게 정리해 줘야 한다. 초보 농사꾼도 주변 농가에서 심고 따고 베는 것만 눈치껏 따라 해도 중간은 간다.
우리 밭 기준으로 50미터 정도되는 길이의 고랑에 참깨 뿌리를 모두 뽑아내고 자리를 만든다. 배추 심을 고랑 4개, 무 심을 고랑 3개 정도 해서 총 7개 고랑을 정리하는데, 이 작업만 보통 반나절 이상 꼬박 걸린다. 여름 볕이 아직 뜨거운데 수확하고 남은 농작물 뿌리를 하나하나 제거하는 작업이 정말 보통 일이 아니다. 심는 일 보다 뽑는 일이 더 힘이 들고 뒤처리하느라 허리 한 번 제대로 못 펴고 뿌리와 씨름하다 보면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는다.
3. 고랑 부족하면 고추 뿌리까지 뽑아내야
참깨 밭만으로 고랑이 부족할 때는 어쩔 수 없이 아직 싱싱한 풋고추와 홍고추가 달려있는 고추나무를 아깝지만 뿌리까지 뽑아내서 고랑을 새로 만들어 줘야 한다. 여러가족의 김장을 위해 배추와 무 청갓 홍갓에게 양보를 해야 한다. 고추 뿌리는 땅속 20센티 정도 깊이로 박혀 있어서 뽑는 것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은데, 진짜 문제는 고춧대에 달려 있는 풋고추랑 붉어지고 있는 고추들이다.
그냥 버릴 수가 없으니 일단 고추대를 가 쪽으로 잘 옮겨놓고, 붙어있는 풋고추랑 붉은 고추를 하나하나 다 따내는 작업을 거쳐야 한다. 고추 따랴, 뿌리 뽑으랴, 흙 다시 고르랴 손이 두 번 세 번 가다 보니 이 작업이 김장 준비 중에서도 제일 고되고 힘들다. 그래도 이렇게 고랑을 깨끗하게 정리해 놓아야 배추와 무 가 뿌리를 깊게 내리고 잘 자랄 수 있다.


4. 배추 200포기, 친지·가족 나눔을 위해 다시 시작
올해는 배추를 200포기 심을 예정이다. 이제 막 고랑을 만들기 시작했으니 또 한동안 밭에서 살다시피 해야 할 것 같다.
200 포기라고 하면 다들 그렇게 많이 심어서 뭐 하냐고 물어보는데, 이거 우리 집만 먹으려고 심는 게 아니다. 겨울에 김장 크게 해서 친지들과 가족들 여럿이서 나누어 먹으려고 매년 이렇게 넉넉하게 심는다. 매년 김장 때가 되면 김장 담는 일이 집안 행사가 되어 버린다. 이틀 동안 각지에 흩어져 있던 형제 친지들이 모여서 김장을 하게 된다. 배추와 무를 뽑아내면 한 해 농사의 마무리 작업이며 식구들 모여서 맛있게 김장 김치 나눠 싸 들고 가는 모습을 생각하면, 8월 뙤약볕 아래서 참깨 뿌리 뽑고 고추 뿌리 솎아내며 고랑 파던 수고로움도 싹 달아난다. 그래서 나는 올해도 어김없이 밭으로 나가 땀을 흘리며 배추 들어갈 자리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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